어눌한 말투, 팔다리가 떨린다면 '저체온증'을 의심

하보니

기름값이 치솟으며 커지는 난방비 부담에 보일러를 틀지 않은 채 이불로 버티는 이들이 상당수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난방이 이뤄지지 않는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이 한랭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발표한 '한랭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자료에 따르면 한랭 질환자 5명 중 1명은 집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랭질환은 추위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인체에 피해를 주는 질환을 일컫는 말로, 저체온증이 대표적이다.

저체온증은 장시간 신체가 추위에 노출돼 정상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심부 체온이 35°C 미만으로 떨어지는 상태다. 심장·폐·뇌 등 주요 장기 기능이 저하하고 말이 어눌해지거나 기억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가 하면 팔다리에 심한 떨림 증상도 나타난다.

증상 정도에 따라 경증과 중증도, 중증 등으로 구분된다. 경증은 심부 체온이 32~35°C인 상태로 떨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피부에 '닭살'이 나타난다. 중증도는 심부 체온이 28~32°C로 근육떨림이 멈추고 동공이 확장되는 단계다. 중증은 심부 체온이 28°C 이하인 경우다. 심실세동 같은 치명적인 부정맥이 발생해 심정지가 일어나거나, 혈압이 떨어지며 의식을 잃을 수 있다.

저체온증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발성(환경성) 저체온증과 대사성 저체온증이다. 우발성 저체온증은 추운 환경에 노출되면 생길 수 있다. 특히 옷을 충분히 입지 않고 비에 젖거나 바람을 맞으면 위험하다. 물은 열전도율이 높아 사람 체온을 더욱 빠르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대사성 저체온증은 갑상샘기능저하증, 부신기능저하증, 뇌하수체기능저하증 등 내분비계 질환이 원인이다. 저혈당이나 뇌손상, 종양, 뇌졸중과 같은 중추신경계 이상으로도 저체온증이 유발될 수 있다.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중독 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알코올은 혈관을 확장시켜 열 발산을 증가시키고 중추신경계를 억제해 추위에 둔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체온 떨어지면 혈액 점도도 높아져

저체온증이 발생하면 따뜻한 곳으로 몸을 옮기는 게 최우선이다. 특히 체온 소실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목과 머리는 목도리와 마스크, 모자 등으로 보온해야 한다. 동시에 수분 공급도 이뤄져야 한다. 혈액은 체온이 떨어질수록 점도가 높아지는데, 이 경우 정상적인 혈액순환이 이뤄지지 않는다. 의식이 있으면 따뜻한 음료와 당분을 섭취하고, 의식이 없다면 호흡·맥박 체크와 함께 필요한 경우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수액을 공급해줘야 한다.

손강호 대동병원 지역응급의료센터장(응급 의학과 전문의)은 "실내 공간은 바람을 막아 주고 외부 기온 영향도 줄여주지만, 그럼에도 겨울에는 난방 등을 통해 적정 온도를 유지해야 건강을 해치지 않을 수 있다"며 "평소 한랭 질환 예방을 위한 건강 수칙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고령이거나 심뇌혈관 질환, 고혈압 등 한파에 취약한 민감군은 건강 상태를 자주 체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